
“교과서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전공의 시절, 저도 이 말을 자주 했습니다. 교과서는 안전한 문장이었습니다. 수많은 의사들이 검증한 표준이니까요. 환자에게도, 저 자신에게도 그 문장은 든든한 근거였습니다.
그런데 진료실에는 교과서에 없는 눈이 계속 찾아왔습니다.
교과서를 인용하는 데서 멈추면,
교과서에 없는 환자는 도울 수 없습니다.
표준을 인용하는 사람에서, 표준을 쓰는 사람으로
망막은 안과 안에서도 유독 변수가 많은 분야입니다. 같은 황반변성이라도 어떤 눈은 주사 세 번에 안정되고, 어떤 눈은 열 번을 맞아도 진행합니다. 당뇨망막병증은 혈당 수치가 비슷한 두 사람에게서 전혀 다른 속도로 나타납니다. 교과서가 말하는 것은 평균이고, 제 앞에 앉은 사람은 한 명입니다.
그 간격을 메우는 방법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스스로 기록하고, 분석하고, 정리해서 남기는 일. 그렇게 쓴 글들이 모여 결국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 「망막」 제5판 (한국망막학회, 2021) - 국내 망막 분야를 대표하는 교과서. 후배 안과 의사들이 망막을 배우는 책의 공동집필에 참여했습니다.
- 「황반」 초판 - 실명의 주원인인 황반질환을 단독으로 다룬 저서. 초판 공동집필에 참여했습니다.
- Albert & Jakobiec's Principles and Practice of Ophthalmology, 4th Edition (Springer, 2021) - 미국 안과를 대표하는 영문 교과서의 최신판 공동집필에 참여했습니다.
가르치는 자리에 서면, 진료가 달라집니다
글을 쓰는 일과 시험 문제를 내는 일은 닮아 있습니다. 둘 다 “무엇이 표준인가”를 스스로 정의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저는 2011년 의사 국가고시, 2020년 제63차 안과 전문의 자격시험의 출제위원으로 참여했고, 대한안과학회 학술지 Korean Journal of Ophthalmology의 논문 심사위원으로 일했습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의료기기 임상전문가로 활동했습니다.
이 일들은 화려한 경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루하고 꼼꼼한 작업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 오래 있으면 습관이 하나 생깁니다.
“왜 그렇게 하는가”를
설명할 수 없는 치료는,
하지 않게 됩니다.
환자분께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교과서를 썼다는 사실만으로 수술이 더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 ✓왜 이 치료인지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근거를 정리해본 사람은, 그 근거를 쉬운 말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 ✓표준에서 벗어난 눈을 알아봅니다. 평균을 정의해본 사람이, 평균이 아닌 경우를 더 빨리 알아챕니다.
- ✓모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문의 경계를 아는 사람은, 그 경계 밖에서 함부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진료실에서 제가 드리는 설명이 조금 길다고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건 제가 교과서를 인용하는 대신, 환자분의 눈을 설명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 송원경